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논쟁: 선물 ETF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 바로 진행할 것인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국내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그 도입 방식을 둘러싼 업계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현물 ETF 출시에 앞서 선물 ETF를 먼저 상장해 시장의 충격을 줄이는 ‘완충 장치’로 삼아야 한다는 ‘선물 선행론’과, 이미 규제 기반이 마련된 만큼 불필요한 절차 없이 바로 가야 한다는 ‘현물 직행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어떤 방식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 제도화의 속도와 방향이 결정될 전망이다.
디지털자산 데이터 플랫폼 소소벨류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에는 약 7억6960만달러(약 1조원), 이더리움 현물 ETF에는 2억1919만달러(약 2996억원)가 순유입됐다. 미국 금융시장에서 디지털자산 기반 현물 ETF는 점차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국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물 ETF 상품 도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행 법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국회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 최근 발의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디지털자산을 금융투자상품의 기초자산에 포함하고, 신탁업자가 이를 수탁·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제도화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현물 ETF를 실제 시장에 어떻게 도입할지를 두고 업계의 입장도 분명히 갈리고 있다. 일부는 선물 ETF를 통해 가격 조작 방지나 자산 보관(커스터디), 시장 투명성 확보 등을 위한 보다 정교한 규제를 사전에 검증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이미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감독과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는 만큼, 선물 ETF 없이도 현물 ETF 도입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지난 5월 열린 ‘K-비트코인 현물 ETF: 미래 금융의 게임체인저’ 행사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즉각적인 출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선물 ETF를 먼저 도입해 시장을 검증하고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완충 단계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선물 ETF는 법적으로 허용된 만큼 이를 먼저 도입해 시장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현물 ETF 도입을 위한 제도적 시험대로 삼아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ETF를 출시하려면 추종할 기초지수가 필요한데 디지털자산의 경우 어떤 지수를 기준으로 삼을지에 대한 논의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국내에는 디지털자산 기초지수 자체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 ETF를 먼저 도입하더라도 현물 ETF 설계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 단계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기초지수가 없는 상황에서 단기 선물 계약을 연속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은 현물 가격을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디지털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현물 ETF 도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가격 기준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초지수인데 선물 ETF는 이와 무관한 구조로 운영된다”며 “결국 선물 ETF를 도입한다고 해도 현물 ETF에 필요한 규제·시장 인프라를 점검하거나 실질적인 교두보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위원도 “비트코인 선물 ETF는 투자 전략을 수행하는 상품이라기보다, 만기가 짧은 선물 계약을 계속 교체하면서 현물 가격을 모방하는 구조”라며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탓에 수익률이 깎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익성이나 구조적 효율성 등 여러 측면에서 현물 ETF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고 현물 ETF 도입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선물 ETF의 투자 매력이나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선물 ETF가 현물 ETF 도입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은 현재 국내 규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겐슬러 전 SEC 의장이 현물 시장에 감독 체계가 없다는 이유로 선물 ETF만 허용했던 것은, 당시 미국 시장의 제도 미비에 따른 예외적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상황은 이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최근 국내는 이용자 보호법 시행으로 주요 거래소가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고 있어,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상황에서 굳이 선물 ETF부터 도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겐슬러 전 의장이 사임한 이후 SEC 역시 디지털자산 ETF에 대해 보다 유연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한국이 과거 미국의 전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