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속도 조절…빅테크도 화석연료로 눈 돌린다
2018년 사명을 Statoil에서 변경하며 리브랜딩한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 Equinor (출처: Reuters)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 사업 속도를 늦추며 화석연료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친환경 전환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연간 석유·가스 투자 규모를 100억 달러로 20% 확대하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15억~20억 달러로 70% 줄이겠다고 밝혔다. 머리 오친클로스 BP 최고경영자는 "장기적인 주주가치 증대에 초점을 맞추는 BP의 리셋"이라고 설명했다. BP는 2020년 태양광·해상풍력 사업 등 친환경 전환을 선언했으나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최근에는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으로부터 '친환경 전략을 철회하라'는 압박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셸과 노르웨이의 에퀴노르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퀴노르는 향후 2년간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원유 생산량은 10% 확대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사명에서 '석유'를 뺐던 에퀴노르가 7년 만에 화석연료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유턴'의 배경에는 높은 재생에너지 전환 비용이 자리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원가 절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여전히 비용 부담이 크다"며 "재생에너지는 생산량의 일정성이 부족해 안정적인 공급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으로 화석연료 투자 환경이 개선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 안정성이 중요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변수는 인공지능(AI) 산업이다. 트럼프 1기 때 탄소배출 저감을 추진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 등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해 천연가스 발전을 활용할 계획이다. 엔베러스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에 최대 80개의 신규 천연가스 발전소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단어가 AI 데이터센터로 대체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국내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말,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해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수퍼스테이션'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주유소를 친환경 거점으로 전환해 전국 3000곳까지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4곳만 운영 중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완전히 흐름이 바뀌었다"며 "에너지 기업들이 기존 화석연료 사업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연가스가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를 잇는 '브릿지 연료'로 부상하면서, 국내 기업의 미국 가스전 투자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저탄소 경제 전환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며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국내에서도 화석연료 회귀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