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값 1000원 턱밑… '수퍼 엔저' 시대 막 내리나
경기 침체 우려로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엔화 (출처: The Washington Post)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100엔당 1000원 선에 바짝 다가서며, 한동안 지속됐던 ‘수퍼 엔저(엔화 가치 하락)’ 시대가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100엔당 원화 가치는 995원을 기록했다. 이는 연초(941.34원) 대비 5.7% 하락한 수치로, 2023년 4월 26일(1000.98원) 이후 약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여름, 원화값이 100엔당 855원까지 급등하며 일본 여행이 급증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엔화의 약세 국면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이번 엔화 강세는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와 엔화로 몰리면서 촉발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초 4.7%에서 10일(현지시간) 4.2%로 하락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고 국채로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상승(금리는 하락)한 결과다.
이 같은 안전자산 선호 흐름은 엔화 강세로 이어졌다. 이날 달러당 엔화 가치는 장중 146.63엔까지 상승해,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원화가 100엔당 990원대로 급락(환율 상승)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미국 달러 대비 엔화의 상승 폭이 원화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엔화 강세는 일본은행(BOJ)의 금리 정책 기대감도 한몫했다. BOJ가 올해 상반기 중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엔화 가치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엔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원화 가치는 100엔당 1000원 선도 뚫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 달러도 약세 흐름을 보이며 엔화 강세를 부추겼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6거래일 연속 하락해 103.8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 1월과 비교해 5.6% 하락한 수치로, 지난해 11월 6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 확정 직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투자자들이 달러에서 벗어나 안전자산인 엔화와 국채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 강세와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화 강세가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한국 수출기업에는 일시적 긍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미국의 경제 정책,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여부 등이 엔화 환율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